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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1월 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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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리포트]광주·전남 행정통합, ‘제2의 탄생’을 위한 결단

- 인구 320만, GRDP 130조의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화합의 설계도’ - 농어촌 소외와 빨대 효과 대안 없는 통합은 ‘무늬만 메가시티’ 전락 우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2일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뒤 민주의 문 앞에서 ‘전남·광주 행정통합 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전남도청제공]
김영록 전라남도지사와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2일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마친 뒤 민주의 문 앞에서 ‘전남·광주 행정통합 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진=전남도청제공]

1986년 광주와 전남이 행정적으로 분리된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 양 지역은 ‘한 뿌리’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대형 국책 사업이나 공공기관 유치 앞에서는 소지역주의의 장벽에 가로막혀 갈등을 빚어온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26년 벽두를 달구고 있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는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고 소멸의 위기에 처한 호남을 구할 ‘마지막 승부수’라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한다.

행정통합이 가져올 지표는 압도적이다. 인구 320만 명, 지역내총생산(GRDP) 130조 원 규모의 ‘슈퍼 지자체’는 전국 4위권의 경제 체급을 의미한다. 광주의 인공지능(AI)·모빌리티 역량과 전남의 에너지·철강·석유화학 자원이 단일 경제권 안에서 결합한다면, 글로벌 기업 유치와 미래 산업 가치사슬(Value Chain) 구축은 비약적인 속도를 낼 것이다. 이는 단순히 두 지역의 합(1+1=2)이 아닌, 규모의 경제를 통한 질적 도약(1+1=α)을 예고한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 뒤에는 거대한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다.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주민의 동의’다.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목표로 추진되는 지금의 속도전은 자칫 ‘단체장들만의 잔치’로 비칠 우려가 있다. 시·도민들이 “내 삶에 어떤 이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통합의 동력은 순식간에 식어버릴 것이다. 과거 통합을 시도했던 타 지자체들이 번번이 좌초했던 이유도 결국 ‘위로부터의 통합’이 가졌던 한계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대구·경북과 부울경은 왜 멈췄나?

우리는 이 길을 먼저 걸어갔으나 결국 멈춰 서야 했던 대구·경북(TK)과 부울경(PK)의 사례를 뼈아프게 되짚어봐야 한다. 그들의 실패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행정통합이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예고된 복병’이기 때문이다.

먼저 대구·경북의 사례는 ‘공간적 기득권’의 충돌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준다. 통합의 당위성에는 합의했으나, 정작 ‘통합 시청사를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지엽적일 수 있는 논의가 시작되자 지역 간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경북 북부권의 소외 우려와 대구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통합은 지역을 하나로 묶는 ‘용광로’가 아닌 분열의 ‘발화점’이 되고 말았다. 광주·전남 역시 통합 청사 입지나 행정 중심지 배치를 두고 발생할 갈등을 사전에 조정할 정교한 ‘이익 공유 장치’가 없다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부울경 특별연합의 무산은 ‘빨대 효과에 대한 실존적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다. 부산이라는 거대 자석이 경남과 울산의 인구와 인프라를 흡수할 것이라는 공포는, 통합이 가져올 막연한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강력했다. 특히 울산처럼 광역자치단체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지역일수록 ‘변방으로의 전락’에 대한 거부감은 컸다. 이는 광주와 전남의 관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전남의 22개 시·군이 통합 지자체의 들러리가 될 것이라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통합은 시작도 하기 전에 동력을 잃을 것이다.

전주·완주 통합의 반복된 실패는 ‘주민 정서’를 간과한 행정 편의주의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다. 정치권은 경제적 효율성과 체급 상향을 외쳤지만, 주민들은 당장 내 생활권의 복지가 줄어들거나 혐오 시설이 들어오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행정통합은 단체장들의 ‘정치적 승부수’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지점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현재의 논의는 시·도민의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광역단체장과 정치권의 주도로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불과 5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통합 단체장 선출’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효율성만을 강조한 행정 편의주의적 사고일 뿐이다.

두 번째는 ‘농어촌과 소지역의 소외’ 문제다.

행정통합이 이루어지면 자원과 인프라는 자연스럽게 효율성이 높은 거점 대도시로 집중되기 마련이다. 이미 광주로의 인구 및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뚜렷한 상생 대안 없이 통합이 강행된다면 전남의 농어촌 지역은 대도시의 배후지로 전락하는 ‘빨대 효과’를 피하기 어렵다. 이는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통합이 오히려 소지역의 소멸을 부채질하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정치적 셈법’에 대한 경계다.

일각에서는 이번 통합 선언이 차기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승부수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낸다. 실제 대구·경북 등 타 지역의 사례에서도 행정 기구의 위치나 권한 배분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으로 통합 논의가 수차례 좌초된 바 있다. 실질적인 자치권 이양이나 재정 특례에 대한 중앙정부와의 구체적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선거용 ‘이슈 몰이’로 통합을 추진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민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성공적인 통합을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핵심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 확보를 위한 특별법의 관철이다. 이름만 거창한 통합은 의미가 없다. 국세의 지방세 전환 등 파격적인 재정 분권과 개발제한구역 해제권 등 실무적 인허가권이 특별법에 명문화되어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실질적인 ‘경제적 독립’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통합 지자체는 덩치만 큰 종이 호랑이에 불과할 것이다.


둘째, 광주 중심의 일극화를 탈피한 ‘다극형 네트워크(Multi-node)’ 도시 체계의 구축이다. 모든 자본과 인프라가 광주로 쏠릴 것이라는 전남 농어촌 지역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광역급행철도(GTX-호남권)를 통해 광주, 나주, 목포, 여수를 30분대 생활권으로 연결하고, 통합으로 발생하는 행정 절감액을 낙후 지역에 우선 투자하는 ‘상생 기금’ 시스템이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


셋째, ‘주민 주도의 숙의 민주주의’ 실천이다. 행정통합은 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다. 단체장 중심의 ‘탑다운(Top-down)’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통합의 실익을 직접 토론하고 결정하는 공론화 플랫폼이 마련되어야 한다. “방향이 틀린 속도는 퇴보보다 위험하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며 주민의 마음을 얻는 인내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광주·전남 행정통합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40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는 이 길은, 낡은 행정의 경계를 허물고 호남의 미래 세대에게 ‘자부심 있는 고향’을 물려주기 위한 고귀한 여정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속도보다 방향을, 선언보다 설계도를 보며 호남의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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