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장(腸)이 영양소 결핍 상태를 감지하고 뇌(腦)의 신경회로를 바꾸어 무엇을 먹을지 직접 결정하도록 유도하는 ‘장-뇌 축(gut-brain axis)’의 정밀한 작동 원리가 국내 공동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이번 연구는 동물이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전체 식사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특정 영양소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먹는 섭식 행동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마이크로바이옴-체-뇌 생리학 연구단 서성배 단장 연구팀이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공동 연구진과 함께 단백질 부족 신호를 감지한 장이 뇌를 설득해 필수 아미노산을 선택적·우선적으로 섭취하게 만드는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誌에 온라인으로 게재되며 그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 시간차 두고 작동하는 ‘신경 회로’와 ‘호르몬’의 협공

그동안 장이 단순한 소화기관을 넘어 전신 대사를 조절하는 ‘제2의 뇌’로 기능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장에서 발생한 신호가 어떤 경로를 통해 뇌로 전달되어 구체적인 음식 선택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영양 결핍에 대응하는 장-뇌 축 시스템이 단일 경로가 아니라, 빠른 신경망과 느린 호르몬 작용을 동시에 가동하는 정밀한 이중 시스템이라는 점을 새롭게 밝혀냈습니다.
실험 결과, 장 상피세포가 단백질 부족 신호를 감지하면 먼저 아세틸콜린을 사용하는 장-뇌 신경 경로를 통해 뇌에 신호를 빠르게 전달합니다. 이 ‘빠른 콜린성 신경 회로’는 동물이 초기 필수 아미노산 분자를 즉각적으로 선택해 섭취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후 장에서 분비된 ‘CNMa’ 펩타이드 호르몬이 순환계를 타고 느리게 뇌에 도달합니다. 이 호르몬 신호는 뇌의 특정 뉴런 영역을 활성화하여 필수 아미노산을 선호하는 행동이 장시간 지속 유지되도록 돕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즉, 시간적으로 다른 두 경로가 서로 협력하며 영양 결핍 상황에 정밀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 탄수화물 섭취는 줄이고, 필수 아미노산은 늘리고
연구진은 장 유래 CNMa 신호가 뇌에서 필수 아미노산 섭취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탄수화물(포도당) 섭취를 촉진하는 뉴런(DH44)의 활성은 오히려 강력하게 억제한다는 사실을 추가로 증명했습니다. 몸의 영양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장과 뇌가 스스로 식단을 재조정하여 당분 섭취를 줄이고 필수 아미노산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만드는 셈입니다.
이러한 장-뇌 축 시스템은 초파리 모델을 넘어 포유류인 생쥐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생쥐 실험에서 기존에 단백질 결핍 반응의 핵심 호르몬으로 알려진 간 유래 호르몬(FGF21)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러한 필수 아미노산 선택 행동이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경로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대안적 조절 시스템이 존재함을 증명한 성과입니다.
■ 현대인의 식이 장애 및 비만 치료의 새로운 열쇠
이번 연구는 비만이나 대사 질환, 식이 행동 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 개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기존의 비만·식욕 조절 약물들은 대부분 장 호르몬 신호를 단순 활용하는 수준이었으나, 이번 연구를 통해 자연 분비되는 장 호르몬과 신경망이 뇌에 미치는 정밀한 경로가 규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성배 IBS 연구단장은 이번 연구가 장-뇌의 영양소 선택 원리를 명확히 밝힌 만큼, 향후 비만 및 대사 질환은 물론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식이 장애 치료 연구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습니다. 연구팀은 향후 생쥐 등의 포유류 모델에서 CNMa와 기능적으로 대응하는 신호 분자를 탐색하고, 장에서 뇌로 연결되는 정밀한 세포 기전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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