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노동시장에서 ‘60세 정년’은 현실이 아닌 일부의 특권에 가까웠다. 대다수의 중고령 노동자들은 법정 정년의 문턱에 가보지도 못한 채 50대 초중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으며, 이후의 삶은 단시간·저임금·불안정 고용이라는 ‘질적 하향 이동’의 굴레에 갇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미래연구원이 21일 발간한 ‘생애 주된 일자리 퇴직의 현실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중고령자가 생애 가장 오래 머물렀던 ‘주된 일자리’를 떠나는 평균 연령은 약 54세로 집계됐다. 이는 법정 정년보다 6년이나 빠른 시점이다.
■ ‘정년 퇴직’은 4명 중 1명뿐… 준비 없는 ‘강제 이탈’ 일반화
보고서가 2015년 이후 퇴직한 50~69세 1,460명을 대상으로 실증 분석한 결과, 정년퇴직 비중은 24.6%에 불과했다. 반면 경영상 해고나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퇴직’은 34.5%에 달했다. 특히 근속기간이 5년 미만으로 짧은 노동자 10명 중 6명(60.6%)은 54세 이전에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의 질에 따른 ‘정년 양극화’도 뚜렷했다. 정년퇴직자의 45%가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 출신인 반면, 1~9인 영세사업장 출신 중 정년까지 버틴 경우는 6.5%에 그쳤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중심의 정년 논의가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셈이다.
■ 재취업의 역설: 전문직에서 단순노무직으로
퇴직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노동은 계속되지만, 일자리의 질은 급격히 추락한다. 주된 일자리에서 관리자·전문가·사무직이었던 비중은 퇴직 전 64.0%에 달했으나, 재취업 이후에는 서비스·단순노무직 비중이 39.1%로 급증했다. 숙련된 기술과 경험이 사장된 채, 생계 유지를 위한 저숙련 노동시장으로 대거 편입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재취업 경로 또한 공적 시스템보다는 ‘인맥’에 의존하는 경향(46.4%)이 강했다. 이 과정에서 중고령자들은 연령 차별과 고용 불안, 사회보험 사각지대라는 복합적인 위기에 노출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 자영업자, 폐업 후 ‘안전망 사각지대’ 직격탄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 등)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의 평균 폐업 연령은 53.5세로 임금노동자보다 더 빨랐으며, 폐업 사유의 절반 이상(56.5%)이 수익 부족과 시장 제약 때문이었다.
특히 퇴직 직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비율은 비임금근로자(59.2%)가 임금근로자보다 훨씬 높았다. 임금노동자는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같은 제도적 보호를 최소한이라도 받지만, 비임금근로자의 64.6%는 ‘이용한 제도가 전혀 없다’고 답해 공적 안전망의 한계를 드러냈다.
■ “정년 연장 프레임 깨야… 전환기 관리 체계로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는 현재 정치권과 노동계에서 진행 중인 ‘정년 연장’ 논의가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핵심은 ‘정년을 몇 세로 정하느냐’가 아니라, ‘왜 50대에 주된 일자리를 떠나며, 떠난 뒤에 왜 질 낮은 일자리로만 몰리는가’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미래연구원 정혜윤 부연구위원은 “다수의 중고령자가 정년 도달 전 전환기에서 밀려나며 사회보험 공백과 하향 이동을 경험하고 있다”며 “필요한 것은 정년 연장이라는 이분법적 논쟁이 아니라, 조기퇴직을 늦추는 고용 유지 전략과 리스킬링(Reskilling) 기반의 경력 전환 지원 등 ‘전환경로 중심’의 구조 개편”이라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 ▲60대 이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제도화 ▲민간 커리어컨설턴트를 활용한 전직 지원 ▲비표준·비임금 노동 확대에 대응한 사회보험 체계 재구성 등을 제시하며, 고령층 노동 문제를 복지 차원이 아닌 ‘노동시장 구조’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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